HUFSJAPAN.AC.KR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칼럼

[계간 수필](58) 2009-겨울

<세계의 명산문>(5) 일본편 번역/해설

 

빈 수레

모리 오오가이() 지음

최 재 철 옮김



빈 수레(空車;무나구루마)’는 옛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옛 두루마리그림에 있을 법한 관람용 수레가 떠오른다.

모든 옛말은 그 쓰인 때와 장소의 색깔을 띠고 있다. 이것을 그대로 취하여 사용할 때는 아무도 그 틈새에 이의를 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만 하면 그 말이 사용되는 범위가 좁아진다. 그 범위는 아르샤이슴(archaisme;의고/擬古주의-옮긴이 주, 이하 같음)의 영역을 한정하는 선에 의해 정해진다. 그리고 그 말은 의고문(擬古文) 안에서 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부자유스럽다. 보다 더 한발을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 부자유스러움은 더 한층 심해진다. 무엇 때문일까. 지금 빈 수레(무나구루마)’라는 말을 의고문에 사용하는 데에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의고문이기만 하면 글의 내용이 무엇이든 옛말을 사용해도 좋은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문체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도 있다. 에도의 풍속(手振)(이시카와 마사모치/石川雅望1809년 의고문으로 지은 수필집)이라든지 유곽의 하루(北里十二時)(앞의 책과 같은 저자의 골계본/滑稽本)라든지 하는 것은, 읽는 이가 글()과 일() 사이에 조화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조화는 읽는 이의 감상을 해친다. 그것은 때와 장소의 색깔을 띠고 있는 옛말이 남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바는 글()과 일()과의 부조화이다. 글 자체에 있어서는 여전히 조화를 견지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에 반하여 설령 옛말을 떼어 현대문체에 사용한다면 어찌 될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것을 구어체 문장에 사용하면 어떨까.

문장을 애호하는 사람은 이걸 보고 반드시 분개할 것이다. 구어체 문장은 문장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잠시 접어둔다. 이것을 글로 보는 것을 허용하는 사람이라도 옛말을 그 안에 사용한 것을 보면, 희대(稀代)의 보물이 거친 손에 의해 깨뜨려진 것을 애석해하며 작자를 식견이 좁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은 보수적인 견해이다. 나는 이것을 수긍한다. 그리고 조심성 없게 옛말을 사용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보수적인 견해에만 안주하고 있는 부자유스러움을 견딜 수 없다. 그래서 현대문체를 작성하는 중에, 어쩌다 옛말을 사용한다. 구어체 문장에 있어서도 또한 태연히 이것을 사용한다. 착안하여 굳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에게 변명을 한다. 그건 이렇다. 옛말은 보물이다. 그러나 물려받아 이것을 저장해두는 것은 보물을 썩히는 것이다. 설령 존중하여 사용하지 않은 채로 놔둔다 해도 사용치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나는 보물을 캐내어 살려서 이것을 사용한다. 나는 옛말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옛말이 띠고 있는 고유의 색깔은 이로써 사라진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생명에 희생을 바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변명을 하며 남들의 비방을 개의치 않는다.

 

나는 의중에 말하려고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나는 종이를 펼치고 천천히 空車(쿠우샤;공차)’라고 썼다. 쓰고 나서 뭐라 읽을까 생각했다. 음독(音讀)하면 귀로 듣고 무슨 말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카라구루마(텅 빈 수레)’라고 훈독(訓讀)할까? 이것은 아무래도 정겹지 않은 말이다. 게다가 가볍게 느껴진다. 야윈 남자가 조급히 끌고 가는 듯이 느껴진다. 이 느낌은 내 의중의 수레와 합치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무나구루마(빈 수레)’라고 훈독하기로 했다. 나는 착안하여 이 옛말이 띠고 있는 때와 장소의 색깔을 빼앗아 새로운 말로서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정겹지 않은, 가벼운 듯 느껴지는 카라구루마라는 말을 기피하는 것이다.

무나구루마(빈 수레)는 내가 가끔 가두에서 보는 바로 그 것이다. 이 수레에는 분명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불민하여 이를 모른다. 내 설명에 따라 가리키는바 무슨 수레인지를 이해한 이가 만일 그 이름을 알고 있다면 아무쪼록 가르쳐주길 바란다.

내 의중의 수레는 커다란 짐수레이다. 그 구조는 극히 원시적이고 다이하치구루마(大八車; 두세 사람이 끄는 짐 운반용 이륜 큰 수레)라는 것과 비슷하다. 단지 크기가 이보다 몇 배가 된다. 다이하치구루마(大八車)는 사람이 끄는데 이 수레는 말이 끈다.

이 수레라고 늘 비어있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학(白山) 거리에서 이 수레가 양지(洋紙)를 가득 싣고 오오지(王子)로부터 오는 것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에는 이 수레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이 수레가 빈 수레로 가는 걸 만날 때마다 눈으로 맞이하고 이를 배웅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레는 무엇보다도 확실히 크다. 그리고 그것이 텅 비어있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한층 그 크기를 기억하게 한다. 이 큰 수레가 대로가 좁다는 듯 간다. 이것에 매어 있는 말은 골격이 다부지고 영양이 좋다. 그게 수레에 매어 있다는 것을 잊은 듯 느긋하게 말고삐를 잡고 있는 사내는 등이 곧은 거한이다. 그가 살찐 말, 커다란 수레의 혼령이기나 한 듯이 성큼성큼 간다. 이 사내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일이 없다. 뭔가를 마주쳐도 한발을 늦추는 법도 없고 한발을 서두는 법도 없다.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는 말은 이 사내 때문에 생겼나 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수레를 만나면 걷는 사람도 비킨다. 말 탄 사람도 비킨다. 귀인의 수레도 비킨다. 부호의 자동차도 비킨다. 대오를 이룬 병사도 비킨다. 장례 행렬도 비킨다. 이 수레가 궤도를 가로지르는 걸 보면 전차의 차장이라도 전차를 세우고 묵묵히 그 지나가는 걸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수레는 하나의 빈 수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수레가 가는 것을 볼 때마다 눈으로 맞이하고 이를 배웅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빈 수레가 뭔가를 싣고 가면 좋겠다는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빈 수레와 뭔가를 실은 수레를 비교하여 우열을 논하려고 하는 따위를 생각하지 않는 것도 또한 말할 필요도 없다. 설령 그 뭔가가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

 

<작가 / 작품 해설>

모리 오오가이()빈 수레(空車)

최 재 철

 

모리 오오가이(: 1862-1922)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계몽기 지식인이자 근대문학의 선각자이다. 오오가이()는 동경대학(東京大) 의학부 출신의 군의관으로 독일 유학(1884-1888)을 가서 위생학 연구뿐 만아니라 서양문학을 두루 섭렵하였다. 동서양 문학 일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 삼아 일본근대문학 초창기에 평론과 번역으로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소설가시인학자로서도 여러 업적을 남겨 근대문학 성숙기의 일본 문단에서 나츠메 소오세키(夏目漱石;1867-1916)와 쌍벽을 이루는 작가이다.

오오가이의 대표작은 일본 근대 최초의 번역 시집 그림자(於母影/오모카게)(1889)와 서양문학 번역으로 안데르센의즉흥시인(1892) 입센의노라(人形의 집)(1913) 괴테의파우스트(1913), 단편소설 무희(舞姫)(1890) 망상(妄想)(1911), 장편청년(1910) 기러기()(1911), 역사소설아베 일족(阿部一族)(1913) 산쇼대부(山椒大夫)(1915) 타카세부네(高瀬舟)(1916), 역사전기(史伝) 시부에 츄우사이(渋江抽斎)(1916), 시로 쓴 일기(うた日記)(1905) ,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다방면에 걸쳐 활약하였다.

오오가이는 서양에서 돌아온 보수주의자 답게 동도서기(東道西器)’와 유사한 개념인 소위 화혼양재(和魂洋才)’로서 동서양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복안으로 서양의 장점을 배워 바람직한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그의 수필 빈 수레(空車)(東京日日新聞, 1916.7.6-7.7) 일본의 전통적인 옛말(古言)을 현대문에 살려 쓰는 입장을 표현한 것으로서 전통과 근대의 조화를 추구하는 작가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명산문이다.

이 수필의 소재인 옛말 빈 수레(空車)’ 는 일본 고대설화집인 옛날이야기 모음(今昔物語集)고본설화집(古本説話集)에서, ‘절을 보수하려는 스님이 빈 수레를 하나 갖고 있는 것을 본 어떤 이가 소를 헌납했다는 이야기 속에 나온다. 또한, 오오가이는 문외소견(門外所見)에서 와카(和歌)론을 피력하면서 호걸이 출현하여 의외로 참신한 말로써 의외로 타당한 시가(詩歌)에 들 수 있다면 전통의 회춘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빈 수레(空車)는 다년간에 걸친 관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작자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옛말은 보물인데 이를 방치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옛말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 굳이 현대문에 넣어 사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무렵은 작가가 대작 시부에 츄우사이등의 역사인물전기를 완성할 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빈 수레는 당시 오오가이의 심상 풍경의 상징인 셈이다.

(* 참조: 코보리 케이이치로/小堀桂一郎해설 <문명비평가 오오가이 3-러일전쟁 전야, 망인망어(妄人妄語), 만년의 사상-」『外選集13, 岩波書店, 1982.)

한편, 한국 근대 작가 이광수가 동경유학 시절에 파우스트를 오오가이() 번역으로 읽었다든지 츠보우치 쇼오요(坪内逍遥)소오세키(漱石)와 더불어 오오가이를 일본에서 원고료를 많이 받는 작가로 거론했었다는 것과, 청일전쟁 발발 당시 종군 군의부장으로서 부산에 한 달간 체류하면서 조선 견문 기록을 일청역자기(日淸役自紀(1894) 등에 상세히 적은 오오가이를 상기하면, 그는 우리에게 가까운 우리가 알아야 할 근대 일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참조: 졸저일본문학의 이해민음사,1995.)

옛것을 낡았다고 버리고 새것만 추종하는 요즘 우리들 세태에 비추어 볼 때, 수필 빈 수레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참고로 현대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절실한 화두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고 본다. ()

 

 <번역/ 해설>: 최 재 철(崔在喆)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대학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 일본어대학 학장.

동경대학(東京大學) 대학원(비교문학비교문화 전공) /박사과정 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장 외국문학연구소장 도서관장 역임.

저서:일본문학의 이해(민음사)

중국문학과 일본문학(공저, 웅진출판)

비교문학자가 본 일본일본인(공저, 현대문학).

韓流百年日本語文学(編著, 人文書院)

문학, 일본의 문학-현대의 테마-(공저, 제이앤씨)

무라카미 하루키를 논하다(공저, 제이앤씨)

역서:산시로(三四郎)나츠메 소오세키/夏目漱石 지음 (한국외대 출판부).

오오에 켄자부로 대표작선집(공역, 국일문학사) --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 [최재철교수의 한일문화칼럼-7] '개인'의 발견과 광장 (월간 한국인, 2017년 5월호) file [레벨:30]학부장실 2017.06.08 170
22 [최재철교수의 한일문화칼럼-6] 겨울은 눈 (월간 한국인, 2015년 12월호) file [레벨:30]운영진そ 2015.12.23 864
21 [최재철교수의 한일문화칼럼-5] 애수의계절,가을에대하여 (월간한국인,2015-10월호) file [레벨:30]운영진そ 2015.10.21 1795
20 [최재철교수의 한일문화 칼럼-4] "여름의 노래-한시 시조 와카-" (월간 한국인, 2015-9월호) file [레벨:30]운영진ゆ 2015.09.01 1329
19 [최재철교수의 한일문화 칼럼-2,3] 우리나라 언론의 일본 관련 보도내용 비평(1,2) - (월간 코리아인 2015년 6,7월호) file [레벨:30]학부장실 2015.07.01 2669
18 [최재철교수의 한일문화 칼럼-1] 벚꽃과 한일 간의 이야기 (월간 코리아인 2015-5월호) file [레벨:30]학부장실 2015.05.22 1942
17 [최재철]"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에 즈음하여"(일본어대학홈페이지 소식, 「신년사」2015.1) [레벨:30]학부장실 2015.02.02 2162
16 [최재철] 같은 위치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젊은이들(TESORO 2014 12월호) file [레벨:30]학부장실 2015.01.08 1602
15 [최재철]「삿포로국제친선의모임」과의 인연 (삿포로국제친선의모임 창립25주년 기념지) file [레벨:30]학부장실 2014.06.16 1900
14 [김종덕] 鈴木日出男先生と韓国での源氏物語 [레벨:30]운영진ゆ 2014.06.14 1957
13 [김종덕] 日本留学と宮廷女流文学の研究 [레벨:30]운영진ゆ 2014.06.14 2069
12 [최재철] 소소한 일상에서 찾는 문학의 묘미 (외대학보 970호, 2014.4.15) file [레벨:30]학부장실 2014.05.09 2037
11 [외대학보] 일본 대지진 관련 좌담회 file [레벨:30]운영진ゐ 2011.03.30 7387
10 [최재철] 「번역서 리뷰」- 일역『얼음의 자서전(氷の自叙伝)』(대산문화, 2013 가을호) file [레벨:30]학부장실 2013.12.30 2928
9 [최재철] 「번역서 리뷰」- 일본어역『엄마를 부탁해(母をお願い)』(대산문화, 2012 봄호) file [레벨:30]학부장실 2013.12.30 3252
8 [김종덕] 국어국문학과 일본어일본문학 (외대학보, 2012.05.08) [레벨:30]학부장실 2012.06.11 5998
» [최재철] 세계의 명산문5-일본편-모리 오오가이 "빈 수레"(계간 수필, 2009 겨울호) file [레벨:30]운영진な 2010.12.10 9478
6 [황봉모 선생님께 듣는 일본문학] 게잡이 공선, 아키바 사건, 그리고 한국의 88만원 세대 [레벨:8]운영진ん 2009.10.01 9170
5 [최충희] ‘화과자(和菓子)’ 유감 [4] [레벨:8]운영진ん 2009.09.16 8886
4 [한미경 선생님께 듣는 일본어 이슈] Kimchi / Kimuchi 논란과 일본어의 발음 [1] [레벨:8]운영진ん 2009.09.11 7649